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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8 호 상명대의 바, 자하교지

  • 작성일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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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35
이소명

남영욱 정기자


비 내리는 밤, 무거운 문을 열며


비가 거세게 내리던 어느 저녁, 젊은 청년 하나가 한적한 골목의 칵테일 바에 발을 디뎠다. 빗물에 흠뻑 젖어 흐트러진 머리카락, 축 처진 어깨. 그의 모습은 멀끔한 바의 분위기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끝에 결국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었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따스한 바의 불빛이 그의 초라한 실루엣을 감쌌다.


청년은 주저하는 기색으로 바 안을 둘러보다가, 괜히 삐죽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부터 한 번쯤 들어와 보고 싶긴 했는데… 저 문이 너무 육중하고 어두워서 마치 들어오지 말라는 것 같잖아. 나 원, 장사할 마음이 있는 건지… 쳇.”


그의 말투는 투덜거리는 듯했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는 듯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자 바의 주인인 바텐더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여긴 바(bar)입니다. 바란 하이드 아웃(Hideout)이니까요.”

1 만화 '바텐더',2004, 조 아라키

 

그는 한 손으로 잔을 닦으며 이어 말했다.“갱들의 은신처가 왜 무겁고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졌는지 아시나요? 그것이 있어야 안심하고 숨을 수 있으니까요. 바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문은 외부의 시선을 막아주고,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바깥세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지요. 나이도, 직책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그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청년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바텐더의 말을 곱씹었다. 그때, 바텐더는 그의 손 앞에 투명한 잔을 조용히 놓았다. 마치 특별한 순간을 위해 준비된 빈 무대처럼, 잔 속엔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이곳은 많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당신에게 꼭 맞는 한 잔을 드려도 될까요?”


그렇다. 칵테일 바란 그런 곳이다. 무거운 문을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은신처, 한 걸음 주의를 기울여야만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그러나 일단 찾아내어 문을 넘어서면, 그곳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경험을 선사한다.

누구든 한 잔의 칵테일과 함께라면, 문밖에서는 나누지 못할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곳. 문 안에서의 이야기들은 문 안에서 멈추는 곳. 바란 그런 시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하이드 아웃이 주는 위로의 힘


앞서 말했듯 하이드 아웃, 즉 은신처는 단순히 몸을 숨기는 장소를 넘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육중한 문 뒤에 숨어 있는 하이드 아웃 바는 세상의 시선과 소음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게 하고, 그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조용한 평온함을 선사한다. 바의 무거운 문은 바깥세상과 안쪽 세상을 분리하며, 그 안에서만큼은 자신의 직책, 나이,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하이드 아웃은 손님 하나하나에 위로를 제공한다. 설령 그 테이블 위에 직접적인 위로의 말이 없더라도, 나 하나만을 위해 여러 가지 술을 골라 섞고, 흔들어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칵테일 한잔에 그 모든 말이 담겨있다. 많은 사람에게 음식과 술을 파는 장사를 넘어, 지금 이곳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공간. 칵테일 바의 바텐더는 단순히 술을 제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과 그 장소를 이어주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손님이 느끼는 위안을 극대화한다.



자하 교지: 상명대의 하이드 아웃 바


나는 학내 언론사 중 하나인 ‘자하 교지’ 역시 이러한 하이드 아웃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학내 구성원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하지만 그렇기에 형식을 벗어난 다양한 글을 볼 수 있는, 때로는 외부의 어떤 것들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한 자하 교지의 역할은 그 자체로 교내에서 특이한 지위를 가진다. 캠퍼스의 여느 소식지나 공고문과는 다르게, 자하 교지의 글은 독자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섬세함을 지향한다. 학생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자하 교지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 즉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상명대의 하이드아웃 바’가 된다.


나의 경험과 자하 교지의 역할


자하 교지에서 활동하며 느낀 점은 바로 이 '개별성'이다. 단순히 다수를 위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건조한 사실을 다루는 매체가 아니라, 각기 다른 어디엔가 존재할 독자 한 사람에게 스며들 수 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바텐더가 한 잔의 칵테일을 통해 손님에게 위로를 전하듯, 자하 교지의 글은 누구인지 모를 독자 한 명의 마음에 닿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 역시 처음 자하 교지의 글을 읽었을 때, 이상한 기분이었다. ‘소확행’에 대한 글이었는데, 정말 각 기자분의 개인적인 생각이 가감 없이 들어간 글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언론이었다면, 지나치게 개개인의 생각만 담고 있는 중립적이지 않은 글이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마치 각 기자분의 경험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하 교지라는 나만의 하이드 아웃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지금은 내가 직접 누군가에게 그런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뜻깊게 다가온다.



자하 교지가 나아갈 길


자하 교지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단순히 소식을 전하거나 어떠한 큰 사회적 메시지를 학우들에게 전달하는 길이 아니라 학내 구성원 개개인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는 매체로 자리 잡는 것이다. 칵테일 바가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위로를 제공하듯, 자하 교지 역시 반드시 전교생에게 그 존재를 알려 모두가 우리의 기사를 보게 하겠다- 라는 목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상에 반응하고 눈치 보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독자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는 글을 쓰는 데 주력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학내 신문사와 차별화되어 가지는 자하 교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바텐더가 손님을 위해 칵테일을 만들며, 순간의 위안을 전하듯, 자하 교지는 글이라는 매개체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작은 은신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하 교지라면, 찾아오기는 어렵지만 어렵게 찾은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찾아올 이유가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오늘 밤 당신에게 꼭 맞는 한마디를 드려도 될까요?”